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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김을동씨와 김두한, 김좌진장군에 대해서 물으셨지요? [7]

QAZAlt

주소복사 조회 1304 08.07.22 03:26 신고신고

저의 선배 중에 김좌진 장군의 손자인 김*동이라는 선배가 있습니다. 북성국민학교(초등학교)와 한성중학교, 한성고등학교 선배이자 아현성당을 같이 다녔고, 저의 어머니와 김좌진 본가와 왕래가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정말 조용히 살아가는 분이었습니다. 김좌진장군의 아드님이셨던 선배의 아버님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현재 폴란드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는 김좌진 장군의 며느님만이 살고 있습니다. 중국에 김좌진장군의 후손이 있고, 미국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김두한은 김좌진 본가에서 인정치를 않았습니다. 안동김씨문중에서 안동김씨로 인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김좌진 본가에서는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으므로 인정치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두한이라는 이름과 연관짓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냥 조용히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한 때 김두한과 현존하는 김좌진 본가의 가족과 유전자 조회를 해보자고 했으나 김을동씨의 반대로 인하여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근대사에서 김두한은 이중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김두한의 자서전에 보면 빨갱이들 때려잡았고, 빨갱이들을 여럿 죽여서 사람 좀 그만 죽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는 자랑섞인 말이 나옵니다. 그러데 때려잡았다는 빨갱이들이 철도노조원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조이자 항일운동에 동참했던 철도노조는 해방 후 이승만 독재정권에 협조적이지 않았습니다. 철도노조는 역사도 오래 됐고, 일제와 자유당과 싸우면서 강성노조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철도노조는 1946년 김두한의 조직이었던 대한민청(대한민주청년동맹)에 의해서 유린당했습니다. ‘경찰에 걸리면 살아도 청년단에 걸리면 죽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좌익계 활동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대한민청의 활약은 1946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9월 총파업에서 두드러졌습니다. 당시 김두한은 실습용 총과 수류탄, 죽창으로 무장한 돌격대원 3천명을 위스키에 만취케 한 뒤 용산역 기지에서 파업 중이던 철도 노조원들을 덮쳤습니다. 순식간에 노조원들의 무장을 해제한 대한민청은 이 중 핵심 간부 8명을 추려내 죽창으로 살해한 뒤 역 구내 하수도에 시체를 묻었다고 전해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두한은 한 때 좌익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좌진장군이 좌익에 의해서 살해당했기 때문에 우익으로 돌아서서 이승만 정권의 정치깡패를 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근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입니다.

 

야인시대같은 드라마나 책 등으로 김두한이 영웅시 되고 있지만 사실상 김두한은 영웅이 될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심지어 수표교 아래서 거지 생활을 할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정진영을 납치해 쇠파이프로 직접 때려 죽였습니다. 정진영은 김두한이 전향한 뒤 좌익에 그대로 남아 ‘좌익 주먹’을 이끌고 있던 중 김두한에게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주먹세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의리라는 것을 믿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위에 기술된 김두한에 대한 것은 김두한의 자서전과 근대사 서적을 기초로 작성됐고, 김좌진 일가에 대한 것은 이제는 폴란드에 가 있기 때문에 연락이 끊긴 선배에 관한 것입니다. 이처럼 김두한에 관한 것은 역사에 남은 것은 증명이 가능한데 김좌진장군과의 관계는 아직도 맞다, 틀리다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 한 번 하면 끝날 것을 말입니다. 따라서 김두한이 김좌진장군의 아들이라는 것은 주장만 있고, 김좌진 본가에서 인정치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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